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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작가 조승연의 N잡 소개

넝쿨: 안녕하세요, 승연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정한 뉴스레터 <출근준비>를 함께 만드는 조승연님의 일하는 마음과 태도에 대해 알고 싶어요. 관계 맺는 사람과 생명체들을 따뜻한 온기와 생생함으로 그려내는 승연님이라서 참 궁금합니다. 승연님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를 해 주시겠어요.

승연: <피스북스>라는 평화책방에서 평화교육 기획을 하고, 평화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해서 사람들을 모아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파도>팀에서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을 확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팀원으로서 일하구요, 아직 한국에 도입되지 않은 <젠더화해> 프로그램을 한국에 들여오기 위해 미국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트레이너 과정을 밟으며 준비하는 팀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그림책 작가도 준비하고 있구요. 한 두달 전부터(하하하)

넝쿨: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승연: 전에는 은평구에 있는 살림의료사회적복지협동조합에서 조직활동가로 일했었고 그전에도 두레생협이라는 곳에서 조직활동가로 일했어요. 청소년센터도 잠깐 다녔고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을 잠깐 다니기도 했구요 거의 공동체 활동을 직업적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넝쿨: 비영리 조직,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계속했고 그런 일을 선택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비영리 조직에서 가치 지향성이 있는 일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승연: 이 사회에 빚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맹렬하게 투신하기는 마음이 좀 어려웠고 그래서 최소한 내 취향하고 맞으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찾은 게 공동체 활동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자기만의 공동체들을 잘 가꾸고 그게 잘 연결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한다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어요.

2. 세상을 바꾸는 사람, 조승연의 마음과 태도①: 좋은 관계보다 편안한 관계

넝쿨: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는 건 힘들 때가 많지요. 세상은 눈 앞에서 좋은 방향으로 휙휙 바뀌지 않으니까요, 때로는 그냥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후퇴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저의 집사가 만나본 승연님은 이런 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오히려 “나아지지 않더라도 내 길을 가겠어” 라는 느낌이 있어요. 아주 작은 일이든 큰 역할이든 본인의 관점과 생각을 투영해서 자신만의 색깔 있는 결과물을 내곤 하는데요, 그런 건 일하는 과정에 애정을 가지고 집중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지요. 이렇게 일하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까요?

승연: 저는 제가 속한 공동체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조금 옅어졌지만요, 소속된 그룹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그 그룹을 유지하고 그런 그룹일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의 역동성을 좋아하고 그러다보니 그 구성원들을 좋아하게 되는 마음이 너무 강렬했어요. 제가 하는 활동이 사회에 좋은 일이라는 확신도 있지만 그것보다 제가 지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넝쿨: 승연님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일의 원동력이네요.

승연: 제가 얼마 전에 동료한테 반농담으로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밖에 없는데 그 이유가 내가 진짜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어요. 저 사람 저렇게 멋진 면, 좋은 면이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발견할 때 정말 좋거든요. 사람들하고 관계 맺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까 그 상대를 편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고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편안한 부분, 좋거나 긍정적인 부분을 저한테 많이 보여주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넝쿨: 상대방이 승연님을 만날 때 편안한 마음으로 더 좋은 모습,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면,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텐데요 그런데 본인의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아요? 타인에 대한 관심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까요.

승연: 예전에는 제가 저 사람과 잘 소통하려면 저 사람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저 사람에 대해 관심 갖고 있는 걸 저 사람도 느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거 같아요. 사람들과 이런 정도로 피드백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어느 순간에 터져버렸죠. 계속 관계 중심의 일을 해왔었으니까요. 그래서 절에 3개월 동안 다녀온 적도 있어요. 달라진게 있다면, 지금은 사람에 대해서 그 순간에 집중할 수는 있지만, 섬세하게 계속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거에요. 사람을 만나는 순간에 큰 두려움 없이 약한 모습도 진솔하게 드러냈을 때 상대방도 편안한 모습, 진짜 모습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좋은” 모습보다는 “편안한” 모습으로요.

넝쿨: 그러면 예전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훨씬 편해진 거네요.

승연: 네, 그렇죠. 예전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만나느라 애를 많이 쓰고 소모되는 느낌이 너무 컸었는데요 이제는 사람을 예전처럼 많이 만나지 않기도 하구요 만약 그렇다 해도 그전처럼 소진되지 않을 것 같아요.

3. 그림을 그리는 이유

넝쿨: 과거에는 마을 공동체에서 대중적인 역할을 했다면, <파도>나 그림작가의 경우는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나요?

승연: 학교 다닐 때는 사회를 위해서 더 큰 역할을 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공동체 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해내야지 라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동그라미나 팔 길이로 표현하자면, 대학교 때는 무슨 마징가 팔처럼 대한민국 전체로 막 쭉쭉 늘어났다면 협동조합 할 때는 내 지역 내 동네로 뻗었고, 지금은 그냥 그 동그라미가 쪼그매진거 같아요. 내 그릇이 작아져도 나쁘지 않고 괜찮은 거구나 생각하는데 팔이 마징가제트 길이였을 때부터 지금 이렇게 쪼끄매질 때까지의 과정이 내 마음 속에서 정리가 덜 된 거예요. 그리고 어떤 때는 다시 마징가처럼 팔이 길어져서 엄청 멋진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발견하구요. 그런 것들을 좀 정리하고 싶어서 나 자신한테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고 그 도구가 그림이 된거 같아요.

넝쿨: 어떤 그림을 그릴 때 조금 더 기분이 좋은가요. 어느 그림이나 기분 좋은 과정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거 그릴 때가 참 좋다 이런 게 따로 있나요.

승연: 주의가 산만해서 잘 집중을 못하는데 그림을 그릴 때는 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좋아요. 특히 좋아하는 순간은 붓이 아니라 아크릴 물감을 손가락에 짜서 그냥 쭉쭉 종이에 그려본다던가 큼직큼직하게 약간은 엉망진창 추상화 같은 느낌으로 그려볼 때에요. 그럴 때 해방감이 느껴져요.

4. 뉴스레터 <출근준비>에서 노동이슈를 그리는 마음

넝쿨: 승연님이 <출근준비> 뉴스레터 첫 번째 시즌 출근브리핑에서 여섯 번을 그렸는데요 저의 집사가 1호부터 6호까지 매호의 주제를 드리면 혹시 준비하는 과정이 있었나요.

승연: 그럼요, 엄청 찾아봐야 돼요! 그 주제에 대해서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연차휴가라고 하면 제 연차휴가 몇 개인지만 알지 개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서 혹시 의미가 다르게 전달될까봐 기본적인 정보들을 찾아보고 공부해요. 관련된 삽화들도 많이 보구요.

넝쿨: 그림마다 주제를 응축해서 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확장해서 보여준 적도 있었지요. 그래서 각 그림마다 어떤 그림은 감동적이고 어떤 그림은 재미있고 다 달랐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재미나게 잘 부탁드립니다.(둘다 웃음)

5. 세상을 바꾸는 사람, 조승연의 마음과 태도②: 협업이 잘 되는 사람

넝쿨: 저의 집사가 이 질문을 꼭 해달라고 했는데요, 승연님은 ‘어떻게’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요.

승연: 빨리 그림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답답해지기도 해요. 그림작가님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혼자 일해야 한다는 느낌 때문이에요. 저는 협업이 잘 되는 사람이고 싶거든요. 일을 잘하는 게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저는 협업이 잘 되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일을 활동으로 하든, 돈벌이로 하든 협업이 잘 되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유지하고 싶어요.

넝쿨: 승연님은 협업을 잘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이미 협업을 잘하고 있는 사람 같아요. 여러 조직들에서도 그랬고, <출근준비> 뉴스레터 팀에서도 협업을 이미 잘하고 있으니까요. 승연님은 그림작가를 하면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조금 더 재미난 일들을 많이 벌이실 거라는 예상이 되는데요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승연: 이번 인터뷰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평화교육 기획과 <파도>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젠더화해>, 그림책 작가라는 네 가지 큰 갈래더라구요. 남들이 볼 때는 띄엄띄엄 다른 일들일 수도 있는데 저한테는 이것들이 다 연결돼서 저만의 작업인 그림책으로 구현되면 좋겠어요. 준비하고 있는 그림책도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과 <젠더화해>를 하면서 들었던, 여성으로서 삶에 대한 생각을 담으려고 하는 거라서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로 잘 뭉쳐지고 그게 저의 생활이자 삶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넝쿨: 지금 시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냐에 대해서 설명하다 보면 다양한 이슈들이 생각나는거 같아요. 그래서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하다 보면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조물조물 반죽이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요, 승연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앞으로 재미난 그림책 그리고 그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 속에 재미난 일들 뉴스레터 팀에서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